안녕하세요. 꽃의 디테일을 아는 브랜드, 삼식이삼촌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꽂히실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3월, 진짜 봄이 시작되는 달이에요. 코트 안에 갇혀 있던 어깨가 슬슬 펴지고, 꽃집 앞을 지나면 발걸음이 느려져요. 3월은 새로운 시작이 많은 달이에요.
오늘은 3월에 가장 싱싱하고, 가장 빛나는 꽃 다섯 가지를 소개해드릴게요.
[1]
라넌큘러스
Ranunculus

라넌큘러스는 늦겨울부터 봄까지가 전성기예요. 3월 꽃집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꽃이에요.
처음 보면 장미인 줄 아는 분들이 많아요. 겹겹이 쌓인 꽃잎 구조가 비슷하거든요. 근데 만져보면 완전히 달라요. 라넌큘러스 꽃잎은 실크처럼 얇고 반투명해요. 햇빛이 꽃잎을 통과하면 색이 한 톤 더 밝아지면서 은은하게 번지는데, 그게 이 꽃의 하이라이트예요. 색상도 다양해요. 빨강, 핑크, 노랑, 흰색, 살구색까지. 한 색으로만 모아도 예쁘고, 여러 색을 섞어도 예뻐요.
이름이 좀 특이하죠. 라넌큘러스는 라틴어 '라나(rana)'에서 왔어요. 개구리라는 뜻이에요. 야생 라넌큘러스가 개구리가 사는 습지 근처에서 잘 자랐거든요. 원종은 꽃잎이 다섯 장뿐인 소박한 모습이었는데, 수백 년간 개량을 거듭하면서 지금처럼 겹겹이 풍성한 꽃이 됐어요. 꽃말은 '매력', '매혹'. 장미도 갖지 못한 꽃말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예요.
선물용으로 정말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봉오리 상태로 받아도 화병에 꽂아두면 하루이틀 사이에 점점 커지면서 피거든요. 꽃이 열리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꽃에 관심 없던 사람한테도 꽤 감동적인 경험이에요.
관리는 어렵지 않아요.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주고, 화병에 물을 절반 이하로 채워주세요. 줄기 속이 비어 있어서 물에 많이 잠기면 쉽게 무를 수 있거든요. 물은 이틀에 한 번 갈아주면 일주일 정도 예쁘게 볼 수 있어요.
[2]
수선화
Narcissus

수선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 중 하나예요. 12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3월까지 볼 수 있는데, 3월의 수선화가 가장 건강하고 풍성해요.
이 꽃에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예요.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서 물만 들여다보다 결국 꽃이 됐다는 전설이죠.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어요. 꽃말도 '자기애', '자존심', '고결'이에요. 자기중심적인 것 같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으면 꽤 멋있는 꽃말이에요.
생김새도 독특해요. 바깥에 접시처럼 퍼진 꽃잎이 있고, 가운데에 나팔 모양이 솟아 있어요. 작은 왕관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노란색이 가장 많지만 흰색, 크림색, 주황색 품종도 있어요. 향기도 진한 편이에요. 달콤하면서 약간 풀 냄새가 섞인, 초봄의 공기 같은 향이에요.
한 가지 꼭 알아두실 게 있어요. 수선화는 뿌리와 잎에 독성이 있어요. 알뿌리가 양파랑 비슷하게 생겨서 식용으로 착각하는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기도 해요. 반려동물이 있는 집도 주의하셔야 해요. 관상용으로만 즐기면 전혀 문제없어요.
새 출발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꽃이에요. "너답게 빛나"라는 메시지를 꽃으로 전할 수 있거든요.
[3]
진달래
Korean Azalea

한국 사람이라면 진달래를 모를 수가 없어요. 김소월의 시 한 편 때문이죠.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서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그 마음. 학교에서 한 번쯤은 외워봤을 거예요. 이별의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에요. 슬프기만 한 꽃이 아니라는 거죠.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꽃이에요.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 산에 분홍빛이 번지기 시작하면, 그게 진달래예요. 철쭉과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은데, 구분법은 간단해요. 잎 없이 꽃만 피면 진달래, 잎과 꽃이 함께 나오면 철쭉이에요. 진달래가 먼저 피고, 철쭉은 한참 뒤에 피거든요.
재밌는 건 진달래가 먹을 수 있는 꽃이라는 거예요. 옛날부터 진달래 꽃잎으로 화전을 부쳐 먹었어요. 찹쌀 반죽 위에 분홍 꽃잎을 올려 기름에 지지면, 봄이 접시 위에 담기는 거죠. 진달래술, 두견주도 유명해요. 반면에 철쭉은 독이 있어서 절대 먹으면 안 돼요. 그래서 진달래를 '참꽃', 철쭉을 '개꽃'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개화 시기는 남부 지방 기준 3월 중순부터예요. 서울은 3월 말에서 4월 초. 여수 영취산, 경남 황매산, 부천 원미산이 진달래 명산으로 유명해요. 특히 영취산은 산 전체가 분홍빛 물결로 변하는데, 직접 보면 사진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스케일이에요.
[4]
개나리
Golden Bell

개나리는 한국 특산종이에요. 학명에 'koreana'가 들어갈 정도로, 한국에서 처음 발견되어 신종으로 발표된 꽃이에요. 꽃 모양이 종처럼 생겨서 영어로는 'Golden Bell'이라고 불러요. 꽃말은 '희망', '깊은 정'이에요.
개나리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어요. 어느 부잣집에 스님이 시주를 청했는데, 부자가 "우리 집엔 개똥도 없소"라며 내쫓았대요. 옆집 가난한 사람은 정성껏 시주를 했고, 스님이 짚으로 소쿠리를 만들어줬는데 그 속에서 쌀이 끊이지 않았다고요. 소문을 들은 부자가 이듬해 다시 찾아온 스님에게 시주를 했더니, 이번엔 소쿠리에서 개똥이 나왔어요. 부자가 울타리 밑에 묻었더니, 거기서 노란 꽃이 피었다는 거예요. 이 꽃이 개나리래요.
개나리는 진달래와 거의 같은 시기에 피어요. 잎이 나기 전에 노란 꽃부터 터뜨리죠. 3월 중순 제주도에서 시작해서 서울은 3월 말쯤이에요. 등교길, 출근길 울타리에 노란 물결이 일렁이면 진짜 봄이 온 거예요.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이 동요 모르는 한국 사람 없을 거예요.
신기한 게 있어요. 개나리는 한국 전역에 심겨 있는데, 야생 자생지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어요. 어디서든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끄떡없는데 정작 스스로 자라는 자생지는 못 찾은 거예요. 한국에서 가장 흔한 꽃이면서 가장 미스터리한 꽃이기도 해요.
[5]
벚꽃
Cherry Blossom

3월 말이 되면 온 나라가 벚꽃 이야기로 물들어요. 뉴스에서 개화 시기를 알려주고, SNS 피드가 분홍빛으로 바뀌고. 벚꽃은 3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꽃이에요.
벚꽃 하면 일본 꽃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벚나무가 많이 심어지면서 그런 이미지가 생겼죠. 근데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제주도 한라산이에요. 제주 봉개동과 신례리의 왕벚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요. 최근 유전체 분석에서는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가 유전적으로 별개의 종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복잡한 학술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한라산에 왕벚나무가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해요.
벚꽃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짧은 만개 기간이에요. 활짝 피고 일주일이면 져요.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그게 벚꽃의 절정이에요. 일본에서는 이 짧은 아름다움을 사무라이의 삶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화려하게 피었다가 미련 없이 지는 모습. 2월에 소개한 동백의 퇴장법과 비슷하죠. 근데 동백이 꽃송이째 뚝 떨어진다면, 벚꽃은 꽃잎 하나하나가 눈처럼 날려요. 같은 퇴장인데 분위기가 완전 달라요.
꽃말은 '순결', '정신의 아름다움'이에요. 남부 지방은 3월 말부터, 서울은 4월 초에 만개해요. 진해 군항제가 전국 최대 벚꽃 축제고, 여의도 윤중로도 매년 인파가 몰리죠. 경주, 하동, 제주도 벚꽃길도 유명하고요. 근데 꼭 유명한 곳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동네 골목, 학교 담장, 천변 산책로. 벚꽃은 어디서든 우리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6]
3월의 꽃을 오래 즐기는 법
3월은 날씨가 들쭉날쭉해요. 아침엔 쌀쌀하고 낮엔 따뜻하고. 이런 환경에서 절화를 오래 보려면 몇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물 관리가 제일 중요해요. 이틀에 한 번 물을 갈아주세요. 물을 갈 때마다 줄기 끝을 1cm 정도 사선으로 잘라주면 물올림이 훨씬 좋아져요. 라넌큘러스처럼 줄기가 여린 꽃은 물을 절반 이하로 채워야 해요. 줄기가 물에 잠기는 면적이 많으면 쉽게 무르거든요.
온도도 중요해요. 3월이라 난방을 아직 틀어두는 집이 많은데, 히터 바람이 직접 닿는 곳은 피해주세요. 꽃은 서늘한 환경을 좋아해요. 18~20도가 적당해요.
위치는 밝은 간접광이 드는 곳이 좋아요. 창가에서 살짝 안쪽이 딱이에요. 직사광선은 꽃잎을 빨리 시들게 해요.
3월은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는 달이에요.
오늘 소개한 다섯 가지. 라넌큘러스의 실크 같은 꽃잎, 수선화의 나팔 모양 왕관, 산을 분홍으로 물들이는 진달래, 울타리 위에 희망을 매다는 개나리, 봄의 마지막을 눈처럼 장식하는 벚꽃. 각자 다른 매력이 있지만, 하나는 같아요. 3월에 가장 빛나는 꽃이라는 거.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3월. 꽃집에서 한 송이를 고르든, 벚꽃 아래 나란히 걷든. 꽃과 함께하는 3월은 분명 다를 거예요.